한별

센 강변의 작은 책방

  • 한별
  • 조회 수 97
  • 2018.01.16. 20:58

 최근, 런던 쇼디치에 있는 리브레리아라는 서점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한적한 거리 가운데에 있는, 양옆이 책으로 가득한 복도를 걷는 듯한 작은 책방. 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그런 곳에서 책방을 하면 어떨까 꿈꾸고 있는데, 난데없이 바다 건너 파리에 있는 책방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눈에 띄었습니다. 양옆이 책으로 이루어진 창문 밖으로 파리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그림과 함께요.


책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때 찾아온 책은 서점 주인들의 이야기로 시작됐습니다.


간단 줄거리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 에슈퍼드에서 서점을 하고 있는 새라. 새라에게는 리지라는 멋진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리지는 프리랜서 기자, 세계가 그의 일터입니다. 새라는 리지를 자주 볼 수 없는 것도 안타깝지만, 작은 시골 마을의 무미건조한 삶이 아닌 다른 삶은 어떨까 궁금해합니다.
 어느 날, 파리의 센 강변에서 서점을 하는 친구 소피에게 연락이 옵니다. 지긋지긋한 파리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 마을로 가고 싶다고요. 그러면서 소피는 새라에게 제안을 합니다. "6개월만 서점을 바꾸지 않을래?"


주인공 새라의 남자친구 리지는 시도때도 없이 달달한 말로 새라를 녹입니다. 새라 또한 아무리 심통이 나 있어도 리지의 말과 행동, 손끝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그게 다 풀어져 버리고 맙니다.
 에슈퍼드를 떠나 파리에 도착한 새라. 그녀를 반기는 건 장미꽃이 가득 든 꽃병이었습니다.

 꽃향기를 맡던 새라는 거기서 리지의 쪽지를 발견하죠. 새라가 출발하기도 전에 리지는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 두 사람의 통화 내용도 달콤해요.


그가 말했다. "내가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아쉬워한들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일을 해야 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 앞에 장미꽃들이 얼마나 눈부시게 피어 있는지 몰라."
"그래?" 그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떠난 날 밤에 꿈속에서 내가 당신한테 키스한 횟수만큼 보냈지."


 파리로 찾아온 리지를 만난 새라. 강변에는 요트와 샴페인이 있고, 요트 위에는 세레나데를 연주하기 위해 바이올린 등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리지는 요트를 가리키며 새라에게 말합니다. '마차'에 오르세요.
 배에서 내려 몽마르뜨에 올라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바라보는 두 사람. 한 화가의 그림에 새라의 시선이 머물자, 리지는 그 화가에게 말을 건넵니다. 새라를 그려달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림과 새라에게 번갈아가며 시선을 보낸다는 상상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새라, 하지만 리지의 말에 모델이 되어 자리에 앉습니다. 새라가 없을 때 들여다 볼 기념품을 파리에서 가져가고 싶다네요.


"이걸 설치한 작가는 빨간 얼룩으로 무너진 가슴을 표현하면서 타일을 다시 붙이면 무너져 내린 가슴도 복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싹 틔운 평화와 인류애를 여기에 비유한 거지.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상징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 이렇게 모든 나라말로 사랑한다고."-210쪽


 마냥 비현실적인 것 같은 남자친구의 존재와는 달리, 새라가 파리에서 겪는 일상은 눈물나게 현실적입니다.  처음 책방에 도착해서 짐을 풀기도 전에 카운터부터 봐야 하는 새라. 정신없는 파리의 공항을 뚫고 도착한 서점은 날카로움으로 가득합니다새라가 꿈꾸던 파리의 아름다운 책방과는 꽤나 간격이 있는모습이네요손님 책은 손님이 직접 찾으라는 점원과 애기 젖병  데울  있냐는 손님 사이 만큼이나요.

 그렇게 하루 종일 업무를 하고 보니, 가져온 캐리어는 누군가 통째로 훔쳐가고 없습니다. 여권과 돈은 물론, 에슈퍼드에서 바리바리 싸 온, 새라가 정말 좋아해서 파리에서 팔아 보고 싶었던 책들도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혼자 책들과 함께 지내던 작은 서점과 달리, 소피의 서점은 손님들이 줄을 서서 계산을 기다립니다. 시재는 자꾸 구멍이 나고, 책은 사라지고, 직원들은 새라의 말을 듣지 않고, 매출은 점점 떨어집니다. 새라의 서점 매출을 세 배 올려 둔 소피는, 정작 파리에 있는 자신의 서점이 파산할까봐 걱정합니다. 새라도 잘 해 보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리지가 더 생각날 수밖에, 그리고 그럼에도 함께 있지 못하는 리지에 대한 원망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의 연속...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땐 이보다 좋을 수가 없지만,  리지와 헤어져 있는 동안 새라는 사무치게 외로움을 탑니다. 서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일이 많다 보니 전화 통화도 쉽지 않는데, 가끔 통화를 하게 될 때도 석연찮은 이유로 전화를 마무리짓는 리지. 리지는 한결같이 말합니다. 새라 옆에 계속 있고 싶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새라도 물론 그걸 알고는 있죠.
 파리의 분주한 서점 속에서 점점 다른 모습의 자신을 찾아가는 새라는 언제부턴가 리지가 자신이 필요할 때만 새라를 찾고, 새라는 그걸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는 걸 자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얽매여 있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리지는 당황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요?



다양한 캐릭터, 소설 속 또다른 스토리

에슈퍼드에 있는 새라의 이웃들이 하나같이 따뜻하고 여유로움을 가진 중에 다채로운 매력을 갖고 있다면, 파리에서 새라가 만나는 사람들은 분주함과 화려함 속에 다채롭습니다. 새라의 편이 되어 주는 사람도 있고, 새라와 갈등을 겪는 사람도 있죠.
파리까지 와서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치일 줄은 몰랐던 새라. 에슈퍼드 동네 사람들과 영상통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납니다. 새라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소피가 마냥 즐거워 보이네요. 새라는 자신이 꿈꾸던 파리까지 와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얘기하기는 너무나 창피합니다. 그래서 더 리지가 그리워요.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때로는 강하게 부딪혀가며 그들을 알아 가는 새라. 각자의 사정을 알고 보니, 그리고 이 서점만의 룰을 알아 가다 보니 조금씩 파리지앵이 되어 갑니다.

리지와의 갈등을 겪던 어느 날, 새라는 책방 한구석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서 한 편지 꾸러미를 발견합니다. 한 피아니스트가 그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낸 편지들이죠. 편지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편지를 받은 주인공은 또 누구일까요? 이루어질 듯 이루어지지 않는 편지 속의 이야기를 하나씩 해석해가며, 새라는 리지와 자신의 처지를 편지 속 주인공들의 처지와 비교해 봅니다. 새라는 마지막 편지가 해피엔딩이길 기대합니다.


서점이란, 그리고 책이란?

이 작품 초반부에 제가 푹 빠져든 부분은 서점의 일상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새라는 서점에 있는 책들이 하나 하나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아침에 먼지를 털어 내면서 인사하면 책들은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면서 자신과 함께할 손님을 기다린다고, 추운 겨울날 문이 열리며 들어온 바람에 책들이 흔들리는 이유는 갑작스런 냉기에 책들이 몸서리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저기서 팻말을 OPEN으로 바꾸고 가게  계단을 쓸고 나면 동네 주민들이 어슬렁어슬렁 등장할것이다쌀쌀한 날씨를 피해 서점 안으로 피신한 손님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찻잔을 손으로 감싸고 미로 같은 가게 안의 아늑한 구석에서 오전 내내 책을 읽을 것이다.
 나는  서점이 손님들이 한참 동안 머물  있는 공간이라서 좋았다편안함이 관건이었다재미있는책과 따뜻한 마실 거리만 있으면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기에 충분했다앉을  있는 공간 주변에는 작은 깔개와 쿠션들이 놓여 있었다고리에 외투를 걸고 의자를 찾아서 편물 담요를 무릎에 덮으면  뒤로 한두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보낼  있었다.
 깃털 먼지떨이로 표지를 간질여 잠들어 있던 책들을 깨우며 서점을 천천히 거닐었다책들은 내가 등을 돌리자마자 하루의 시작을 기다리는 것처럼 꼼지락거리고 서로 윙크를 주고받을 것이다여기 당신을 위한 책이 있다고 소개라도 하듯 부연 햇살이 스포트라이트처럼 그들을 비추길 기다릴 것이다.
  서점이 영영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될까요즘 들어 문을 닫는 서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서점을 접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희미하게 불을 밝힌 공간으로 들어가 나한테  맞는 소설을 두리번두리번 찾는 편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손끝으로책등을 쓰다듬을 수도 있고오래된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책장을 펼칠 수도 있고접힌 모서리를반듯하게  수도 있지 않은가누군가 가장자리에 적어놓은 글이나 밑줄 쳐놓은 구절을 보며 예전 주인이  문장 또는  비유에 매료된 이유를 짐작할 수도 있지 않은가.
 중고 책에는 수많은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책들은 여러 집을 거쳤을 수도 있고   집만 거쳤을수도 있다비행기를 타고 햇살이 눈부신 해변에 다녀왔을 수도 있고 배낭 속에 구겨 넣어져서 공기가희박한 산꼭대기로 실려 갔다 왔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장미 향을 풍기는 미지근한 욕조 속에 몸을 담그고 읽은 탓에 책장이 부풀고 뒤틀린 책도 있었다빈칸에 흔적을 남기려고 작정한 고사리손 때문에 헌사 페이지에 낙서가  책도 있었다그런가하면 책갈피를 써가며 어찌나 고이 간수했는지 주인이 보물에 흠집이라도 남길까  책장을 열어보지도 않은 것처럼 생긴 새것 같은 소설도 있었다.
 나는  책들 모두를 사랑했다.

<센 강변의 작은 책방>, 16


새라는 자신의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서점에서 오래오래 머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길 바랍니다. 제가 하고 싶은 책방도 그런 책방입니다.

제가 읽은 책들에서 건진 보물 같은 구절들과 그 책을 읽으며 든 생각들을 종이에 잔뜩 적어서, 코팅한 뒤 책들 사이사이에 끼워 둘 겁니다. 책방에 있는 책들을 하나씩 읽으며 메모들을 하나씩 만들다 보면, 책방은 수많은 메모로 가득하겠죠? 그러면 책방 입구에 이렇게 써 둘 겁니다. 책방을 한 바퀴 돌며 이곳에 있는 쪽지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무엇인가 얻어갈 수 있는 책방이 됐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퇴근길에 차가운 맥주나 따뜻한 커피 대신 서점에 와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선택한 당신에게, 이곳의 책과 쪽지들이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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